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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상평

라스트 제다이 (2017)

스카이워커를 그만 죽여주세요

 

기 : 스타워즈를 추모하며

 

         2017년은 스타워즈 프랜차이즈가 내리막을 걷는 해였다. 중장년 팬덤 사이에서 추모가 이어졌다. 『스타워즈 8 : 라스트 제다이』라는 영화가 개봉한 날이 2017년이기 때문이다.

         글로벌 통계정보사이트 스타태스틱 브레인(Statistic Brain)은 1977년 이래 스타워즈 프랜차이즈가 2015년, 33조 400억원의 수익을 냈다고 발표했다. 그중 1977년 개봉한 첫 번째 스타워즈, 『스타워즈 4: 새로운 희망』은 물가상승률을 고려한 판매수익으로 30억 달러, 우리 돈으로 3조5000억 가량의 수익을 냈다. 2015년도 까지의 캐릭터 상품, 브랜드 상품, 모든 라이센스를 다 포함한 수익의 10%를, 당시 40년 전 극장 티켓 값으로 벌어들였다는 뜻이다. 그리고 『스타워즈 8 : 라스트 제다이』는 3억 1700만 달러를 벌어들인 것으로 집계되었다. 총 수익의 1%다. 세계 최대의 배급사가 최첨단 그래픽 기술로 무장하고 후속 영화를 만들었는데, 정작 40년 전의 독립 영화 제작사였던 루카스필름에서 수작업과 공예로 만든 전작의 발끝에도 못 미치는 흥행성적을 거둔 것이다.

         스타워즈 8편의 감독, ‘라이언 존슨’은 어느 인터뷰에서 디즈니 마블을 폄하하는 관객들을 향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제 생각에는 관객들의 분노는 반복적인 패턴을 갖게 되었어요. 그들에게 분노는 일종의 상품이자 게임이 되었죠.”그는 감정 상하면서까지 제작진에게 ‘비난의 돌’을 던지는 관중들에게 자중할 것을 요구하는 듯한 발언을 했다. 하지만 싫어하는 배역에게 진짜로 생돌을 던졌던 그리스 시대의 관중을 기억하자. 시대는 변해도 감성은 그대로다. 품격을 중시하는 시대로 접어들었지만, 작품을 마무리 짓는 것은 언제나 극장을 나서는 관객과 그들의 반응이다. 영화를 사랑하는 사람들은 지금 분노하고 있다.

 

디즈니는 북미 시장에서 만큼은 이전 시리즈 못지 않게 돈을 벌었다. 얼마나 홍보에 열을 올렸을지 상상이 간다. 디즈니는 돈 먹는 괴물이다.

 

승 : 스토리 텔링학 제 2법칙

 

         이야기의 구성에는 2500년을 내려온, 절대적인 두 가지 법칙이 있다. 연극을 넘어 오늘날 영화 시나리오 구성에도 이 법칙은 유효하다. 첫 번째는 ‘개연성과 필연성을 갖출 것이고, 두 번째는 ‘지루할 틈이 없게 할 것’이다. 두 법칙에서 긍정적인 영화의 이면들이 많이 파생되었다.

         우리나라 영화를 예로 들어보자. 역모의 바람이 부는 한가운데 눈이 먼 광대가 외줄타기를 하는 클라이막스로 마무리되는 영화, 『왕의 남자(2005)』 덕분에 잊혀져 가던 ‘전통연희’가 재조명 되었다. 연산군은 태생 질투와 시기를 밥 먹듯이 하던 왕이었다. 그러나 연산군의 폭정은 어머니를 향한 효심, ‘삐뚤어진 온정’이 빚은 결과이기도 했다. 모성애가 결핍된 왕은 결국 어린시절 자신을 돌봐주던 백모 박씨부인에게 욕정을 느꼈고, 그녀가 자살한 뒤 그녀의 동생 박원종은 쿠데타를 이끌었다. 연산군의 영화는 폭력과 선정성이 가득할 것이 뻔했다. 감독은 폭군의 행위를 정당화하지 않으면서 영화에 인간미를 담아내는 방법을 고민해야만 했다. 그래서 ‘보조 플롯’에 가장 천박한 신분이었던 광대의 열정적인 예술혼을 집어넣었고, 개연성과 재미라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을 수 있었다.

 

<왕의 남자(2005)> 

 

         『스타워즈 8 : 라스트 제다이』는 어떠했는가? 비참했다. 설정은 작품의 개연성에 생명을 불어 넣어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존 시리즈에 있던 설정들을 제대로 지키지 않았다. 예를 들면 제국군 함대의 보호막이 있을 때도 있고 없을 때도 있었다. 4차원을 넘나들며 광속이동을 하는 ‘하이퍼 드라이브’를 시도하는데, 갑자기 3차원에서 충돌한다. 훈련을 따로 받지도 않고, ‘제다이’ 기사의 혈통을 이어받지도 않았으며, 따로 ‘예언’이 없었음에도 주인공 ‘레이(데이지 리들리)’는 처음부터 우수한 기사로 등장한다. 이렇다보니 갈등과 시련의 수준도 낮고, 몰입할 여지를 주질 않는다. 단순한 수준의 전투와 모험만이 러닝타임 2시간 30분 동안 5분 간격으로 계속 반복된다.

 

         "딱히 재미는 없는데 의리로 본다." 트랜스포머, 스타워즈, 마블 등의 영화들을 관람하는 관객들이 영화를 보고 온 후기로 남기는 대표적인 댓글이다. 역으로 생각해보자. 이런 종류의 평가가 많을수록, 영화 제작사는 재미는 없으나 이전의 주인공이 등장하는 시리즈물을 끊임없이 만들 것이다. 마치 좀비 부대의 습격처럼, 정말로 사람들이 질려서 극장을 찾지 않을 때까지, 손익분기점을 넘기지 못할 때까지 ‘구텐베르크 성서마냥’ 계속 찍어 댈 것이다. 기회비용이 커서 부담된다면 일생 한 번의 대박을 원하는 2류, 3류 영화감독을 섭외해서 싼 값에 영화를 제작하려고 할 것이다. 스타워즈 시퀄(:7,8,9편) 외에도 디즈니가 만들어 낸 『로그원 : 스타워즈 스토리(2016)』,『한솔로 : 스타워즈 스토리(2018)』, 드라마 <더 만달로리안(The Mandalorian, 2019)>이 그 증거다. 이들은 하나의 시리즈 물임에도 불구하고 서로 설정이 충돌한다.

 

         일반적으로 영화는 효과적으로 이야기를 전달하고자 할 때 '연출'을 활용한다. 중복되는 연출은 흥미를 끌 수 없다. 모든 서울의 남녀가 크리스마스 때 남산에서 데이트를 한다면, 어느 커플도 ‘남산에서 보는 겨울 야경’을 소중한 추억이라고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아마도 친구 인스타그램에서 봤을법한 내용 그대로의 데이트라면 심심한 것은 당연하다. 같은 맥락으로, 관객들을 설득하기 위해서 가장 필요한 것은 하나의 스토리, 하나의 주제, 그리고 단 하나의 배경이다. 그런데 하나의 배경에서 도대체 몇 개의 영화가 나온 것인가? 대중이 일본 애니매이션을 즐겨보는 사람들을 ‘오타쿠(オタク)'라고 부르며 폄하하게 된 이유가, 철학도 감동도 없는 그저 여학생이 나오는 ’양산형 애니매이션‘을 말단적인 쾌락만을 추구하며 보기 때문이지 않는가. 디즈니는 일반 관객들을 오타쿠로 만들어 영화 산업의 질을 떨어뜨리고 있다.

 

원작의 연출과 배경적 사실을 일일이 풀어써낸 작품에 불과하다면 팬픽이 아니고 무엇인가?

 

승2 : 악인과 가면

 

         사람 얼굴에 그려진 주름은 무수한 산과 그늘진 계곡에 비(比)할 수 있다. 옛 도인들이 산을 오르내리다보니 겨우 산세(山勢)를 읽을 수 있게 되었다는 무협지의 내용처럼, 인간의 표정과 새겨진 세월의 주름은 그 깊이를 가늠하기 어렵다. 소년이 깊이 있는 중년과 노인의 근엄한 얼굴을 동경하듯, 사람들은 가면 뒤의 인물을 꿈꾼다. 가면은 사람의 얼굴을 가려 뒷편의 ‘꾼’이 표현하고자 하는 감정의 깊이를 보는 이가 헤아리도록 만든다. 그렇기에 작중에 사연있는 자들은 가면으로 얼굴을 가린다. 영화 『킹덤 오브 헤븐(2005)』의 문둥병 환자, ‘보두앵 4세’처럼, 소설 《오페라의 유령(1910)》의 ‘에릭’처럼 가면을 쓴 자들은 피치못할 사정을 간직하고 있다.

         영화『철가면(1937, 1977, 1998)』이 떠오른다. 바스티유 감옥에 수감된 한 죄수의 철가면은 사람들이 그의 출생의 비밀을 의심하게 만든다. 혹시나 루이 14세와 판박의 얼굴을 하고 있지 않을까, 바다에 떠내려간 그의 편지에는 무엇이 적혀 있을까, 끊임없이 상상하게 만든다. 그래픽 노블 원작 『브이 포 벤데타(2005)』도 떠오른다. 근미래 파시스트 당이 영구 집권하는 영국, 수수께끼의 사내는 지하기지에서 이렇게 말한다. 「국민이 정부를 두려워 하는 것이 아니라, 정부가 국민을 두려워 해야 해.」 2019년 홍콩 시위대는 11월 5일, ‘가이 포크스 가면’을 쓰고 거리로 나왔다. 실존인물보다 작중 가면을 쓴 캐릭터가 주는 메세지가 더 크게 다가올 때도 있다.

 

 

         스타워즈 시리즈에서 다스베이더의 가면은 그 깊이가 대단하다. 죽음으로부터 사랑하는 사람을 구하기 위해 악과 결탁했지만 결국 동반자를 잃고만 ‘외톨이’ ‘아버지’가 그 가면 뒤에 있다. 악행을 저지른다는 사실을 자각하지만, 지은 죄가 많아 돌이킬 수 없는 ‘죄인’도 그 가면 뒤에 있다. 누구보다 운명을 믿었고, 원로에 충성했지만 결국 배반당한 ‘조직원’도 그 가면 뒤에 숨어있다. 다스베이더는 2m 장신의, 누구보다 검술과 전투에 출중한 제국의 장군이지만, 그의 가면은 나락에 떨어져 허우적 대는 많은 사람들을 대변한다. 그래서 그의 가면은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트릴 듯 슬픈 얼굴로 조각된 듯 싶다.

         다스베이더의 가면이 의미하는 바가 큰 만큼, 제작진은 그 소품을 만드는데 특히 공을 들였다. 악역을 상징하는 것은 검은색이다. 그러나 선과 악이 뚜렷한 만큼, 다스베이더가 느끼는 ‘내적 딜레마’를 관객들이 놓치게 될 가능성도 컸다. 따라서 포괄적인 느낌을 줄 수 있도록 ‘입체적인 검정색’이 필요했다. 『스타워즈 4 : 새로운 희망(1977)』의 시네마토그래퍼(Cinematographer, 전문촬영기사), ‘길버트 테일러’는 다스베이더가 다니는 모든 길과 방의 전등은 석영등(石映燈)만을 사용하도록 주문했다. 다스베이더가 제트 블랙(Jet-black)을 유지하기 위해서였다. 『 스타워즈 5 : 제국의 역습(1980)』 에서는 세계 최초로 CG 기술이 사용되었는데, 다스베이더의 세련미를 돋보이게 하도록 그의 투구를 흑요석처럼 검고 윤택이 나도록 수정했다. 윤광(潤光)을 제외한 부분의 빛의 흡수율을 90%로 수정했기 때문에, 당시 출시된 블랙 벤츠보다 더 검은 재질로 묘사되었다. 현재에 이르러서야 재료과학의 발달로, 실제 재료를 사용해 다스베이더의 투구를 완벽하게 재현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니 40년 전, 관람객들이 다스베이더에게 느꼈을 그 깊이는 가늠할 수 없을 정도였을 것이다.

 

         

전 : 상품화 된 악인과 가면

 

         굳이 아리스토텔레스처럼 나누자면 스타워즈 본편(: 4,5,6편)은 서사시이고, 스타워즈 프리퀄(: 1,2,3편)은 비극이다. 본편의 올드 팬덤은 2000년대에 프리퀄이 나온다는 소문에, 본편의 분위기를 해칠까 염려했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장르가 달랐다고 평가할 수 있으며, 다스베이더라는 인물에게 입체감을 불어넣어주는 긍정적인 결과를 보여주었다.

         디즈니가 시퀄에서 새롭게 세운 악역, 카일로 렌(:애덤 드라이브 분)은 어떠했나. 그 역시 다스베이더의 손자로서 강력한 힘을 물려받았다. 검은 마스크를 쓰고 군대를 지휘한다. 그러나 분노조절장애가 있는 것처럼 묘사되었다. 아버지 한 솔로처럼 담대함도 없고, 삼촌 루크 스카이 워커처럼 광선검을 잘 쓰는 것도 아니다. 할아버지 다스베이더처럼 전쟁터에서 무능한 장군을 즉결 처분한 뒤, 유능한 말단 장군을 사령관에 앉혀 반란군을 괴멸시키는 탁월한 리더십도 없다. 이 캐릭터는 『스타워즈 8 : 라스트 제다이』 러닝타임 내내 소리만 꽥꽥 지른다. 농담이 아니다. 전투에서 졌다고 투구를 집어던진다. 가면이 주는 캐릭터의 깊이는 그 순간 무(無)로 돌아간다. 21세기 들어서 분노조절장애 환자가 많이 늘은 것을 영화에 반영이라도 한 듯 싶다.

 

캐릭터에게 카리스마는 없고 분노만 차 있다.

 

         절대 배우의 문제는 아니다. 애덤 드라이브는 특유의 중저음의 목소리가 매력있는 배우고, 영화 『결혼 이야기(2019)』에서 선보인 연기로 2020년 아카데미 남우주연상 유력 후보로 올라와있다. 결국 배우의 연기력을 십분 활용하지 못한 제작진의 문제가 크다고 할 수 있다. 비교해보면, 카일로 렌의 마스크는 익스트림 스포츠의 일종인 ‘페인트 볼’에서 쓰는 마스크와 닮게 디자인 되었다. 영화에 철학이 없으니, 결국 투구에도 ‘양산형 디자인’을 채택하게 된 것이 아닐까, 합리적 의심을 해 본다.

         뿐만아니라 스타워즈 시퀄에는 특이하게도 은색의 투구를 쓴 스톰 트루퍼(:그웬돌린 크리스티 분)가 등장하는데, 얼굴이 공개되지도 않고 사연을 들을 수도 없었는데 갑자기 낙사해서 죽어버렸다. 『스타워즈 7 : 깨어난 포스』 개봉 이후 홈페이지를 통해 이 스톰 트루퍼의 이름은 ‘캡틴 파스마’임이 알려졌고, 그녀의 과거는 영화가 아니라 따로 소설을 통해 공개되었다. 다시 말해, 영화속에서 그녀가 누군지 파악할 방법은 전혀 없었다는 것이다. 다만 확실한 것은 그녀와 카일로 렌의 마스크는 무수히 많은 종류의 피규어와 장난감으로 제작되었으며, 일본풍의 넨드로이드는 절찬리에 판매중이다.

 

카일로 렌의 마스크에는 철학이 없다. 

 

         이야기는 가치의 변화를 동반한다. 그 가치는 등장인물이나 화자의 것일 수도 있고, 독자나 관객의 것일 수도 있다. '좋은 이야기'는 역사와 철학이 함유된 이야기다. 요즘 뜨는 인공지능 분야의 선구자, ‘로저 생크(Roger Schank)’가 말했다. “인간은 이상적으로 논리를 이해하도록 만들어지지 않았다. 인간은 선천적으로 스토리를 이해하도록 만들어졌다.” 좋지 못한 스토리, 예를 들어 SNS에 떠도는 풍문은, 인간의 생각과 감정을 피폐하게 만든다. 누군가 재미삼아 창작한 불륜 이야기를 내 아내와 남편의 일처럼 착각하기도 하고, 반대 성별에 대한 그릇된 인식을 낳기도 한다. 상식과 논리가 없는 영화가 위험한 것은 바로 이런 이유에서다. 오직 상품화에만 초점을 맞추고 캐릭터를 창작하는 디즈니는 확실히 영화 산업의 분위기를 망치고 있다. 혹자는 디즈니를 옹호하며 말한다. “디즈니가 차라리 찌질한 악당이 멋있게 성장하는 모습을 그리려고 하는지도 몰라.” 하지만 내적갈등이 얕고 투덜대기만 하는 평면적인 캐릭터가 성장하는 모습을 어떻게 그리겠는가? 그런 작품은 절대 보고 싶지 않다.

 

 

결 : 시리즈 액션영화의 몰락

 

         스타워즈를 포함해 많은 시리즈 영화와 프랜차이즈가 몰락하고 있다. 터미네이터 1,2 감독이자 블록버스터 흥행 수표, ‘제임스 카메론’ 감독이 각본을 써서 준 새 터미네이터의 영화, 『터미네이터 : 다크 페이트(2019)』의 북미실적도 그리 좋지 못했다. 처음엔 기존보다 능동적인 여성 캐릭터가 더 많이 등장해 페미니스트들에게 호찬을 받았었다. 원래 터미네이터 시리즈가, ‘사라코너’라는 겁많은 소녀가 위대한 여전사이자 어머니로 성장하는 이야기이므로 일반 대중에게도 별 문제는 없었다. 그러나 기본적으로 이야기의 위기, 절정, 결말이 같은데, 굳이 비싼 돈 주고 영화관에서 찾아볼 사람이 몇 되겠는가. 넷플릭스 같은 유료 스트리밍 서비스로 제공되거나, 홈 시어터용 영화로 다시 나오면 그제서야 빛을 발휘할 듯 싶다. 터미네이터 1을 제작할 당시 제작비 자체가 없어, 저작권과 판권을 담보로 돈을 빌린 것이 카메론 감독 일대의 실수였다. 제작사가 원하는 것은 ‘성별과 인종에 대한 인식의 변화’가 아니라 그냥 돈이었다.

 

서부극 오마주만 많았다.

 

         007 시리즈도 큰 위기를 맞았다. 다니엘 크레이그가 2020년 개봉하는 새 007 영화를 끝으로 하차하겠다고 결정했다. 그런데 흑인 여성이 차기 제임스 본드로 뽑혔다고 발표되었다. 과거 총괄 제작자, ‘바바라 브로콜리’는 “본드 캐릭터는 시간이 흐르면서 변모했다. 여성 캐릭터를 더 많이 넣고 거기에 맞는 스토리를 만들어야 한다.”고 암시했다. 그녀 뿐만이 아니라 《제임스 본드 현상(2003)》 책의 편집자, ‘크리스토퍼 린드너’는 아예 과거 007 시리즈를 깎아내렸다. “많은 변화를 시도했음에도 섹스와 폭력에 대한 집착, 남성우월주의, 국수주의는 첩보전의 핵심이라 여전히 뺄 수 없었고 안타깝다.”

         과거 007이 저급했나?『007 : 골든아이 (1995)』는 요즈음 액션 영화에 견주어도 끝내주는 영화다. 제임스 본드(:피어스 브로스넌 분)는 3차 중동전쟁의 주역인 T-55 소련 주력전차를 ‘본드카’ 마냥 타고 다닌다. 벽돌 건물이 탱크에 부딪혀 와르르 무너질 때 관객은 카타르시스를 느낀다. 이 영화는 전반적으로 화면 전환과 시선처리가 아주 부드럽기 때문에 몰입도가 좋아, 저화질이라고 느껴지지 않을 정도다.

         이 영화에서 제임스 본드는 세 명의 여성과 관계를 맺는다. 첫 번째 여자는 엑스트라로(세레나 고든 분), 자동차 추격전에서 달아올라 그에게 키스해버린다. 두 번째 여자는 제니아(판케 얀센 분)로 소련의 파일럿 출신 테러리스트라는 설정이며, 본드를 육체로 꾀어내 죽이려고 했다. 세 번째 여자는 나탈리아(:이자벨라 스코룹코 분)로 제임스 본드를 돕는 프로그래머다. 그녀는 러시아 비밀무기 ‘골든 아이’의 책임자 중 한 명으로, 본드와 한패가 되어 자신을 도와준 동료의 뺨을 때리고 결국 폭발에 죽도록 내버려 둔다. 과연 과거 007 시리즈의 본드걸들이 수동적인 여성이었는가? 아니면 선택을 강요당했는가? 오히려 MI6의 머니페니(:서맨사 본드 분)는 제임스 본드에게 「성희롱적 발언이에요」라고 경고해주기까지 한다. 선진적인 영화였다.

         어느 시대에든 여색을 밝히는 남자는 존재한다. 다만 그들이 작품의 주인공이었던 것은 관객을 위한 일종의 대리만족에 불과한 이유에서다. 오스카 와일드가 말했다. “남자는 언제나 여자의 첫사랑이 되고 싶고, 여자는 남자의 마지막 사랑이 되고 싶다.” 매번 목숨을 걸고 작전을 수행하는 남자 요원 입장에선, 낯선 곳에서 만나는 그 여자가 인생의 마지막 여자가 될 수도 있다. 그런데 섹스에 대한 집착이라니. 남성우월주의라니. 마치 체 게바라처럼 이 세상 어딘가에서 활동할 ‘로맨틱 전사’들에게는 너무나도 가혹한 잣대다.

 

<007 : 골든아이 (1995)>

 

         오히려 흑인 여성 제임스 본드 시리즈가 더 걱정된다. 이제 런던으로 향하는 핵 미사일을 멈추는 버튼을 간신히 누르며 “대영제국 만세!” “여왕폐하 만세!”라고 외치지 못하면, 우리는 이 시리즈 어디서 카타르시스를 느껴야 하나. 『스타워즈 8: 라스트 제다이』처럼 베트남 계 동양인부터 멕시코 계 백인까지 전부 출연시키느라 인물 관계도가 복잡해지면, 우리는 어떻게 작품을 즐겨야 하나. 실제로 외국지부를 가진 영국 최대 방위산업체, BAE SYSTEMS는 순혈 영국인이 아니거나 정보보호협정을 맺은 미국의 기술자가 아니면 핵심 기술 연구자로 채용하지 않는다고 암암리에 알려져 있다. 이것은 인종차별의 문제가 아니라 생존의 문제다. 첩보물도 같은 맥락으로 봐야한다. 흑인 여성을 굳이 주인공으로 한다면, 인종의 개념이 흐릿해진 근미래를 배경으로, 007은 전설의 야구선수 등번호처럼 고정하고 008이나 009를 쓰는 것이 훨씬 개연성있지 않을까?

         분노의 질주 시리즈로 이름을 날리고 있는 ‘드웨인 존슨’과 ‘빈 디젤’은 최소 3 종류의 인종이 섞인 혼혈인이다. 과거엔 차별도 많이 받았다고 한다. 하지만 지금에 와서 아무도 그런 것을 신경쓰지 않는다. 그들은 시대를 풍미하는 근육질의 액션 배우일 뿐이다. 이솝 우화의 말대로, 「어려운 일은 시간이 해결해준다.」 인위적으로 작중 인물을 바꾼다고 해서 인식이 쉽게 바뀌지 않는다. 진정한 차별주의자는 잣대가 무엇이든 인용하여 옆 사람을 차별하고 홀대한다. 정말로 성별과 인종에 대한 차별적인 시각을 바꾸고 싶은가. 들의 현실에 맞게 개연성 있고 흡인력 있는 스토리를 쓰는 편이 훨씬 좋을 것이다. 그래야 관객들이 차별을 내려놓고 감성을 공유할 수 있을 것이다.

 

 

 

 

글을 마무리 하며:

 

해당 글은 필자가 대학교 기말레포트로 제출한 내용입니다.

 

이 글은 2019년 12월 15일에 처음 작성되었습니다.

이 글은 2020년 3월 14일에 1차 수정되었습니다.

이 글은 17인치 노트북에 맞춰 작성되었습니다. 

 

 제 저작물은 2012년 대학교에서 출판한 공동저작물에서 쓴 단편 소설이 제 '필모그라피'의 전부입니다. 저는 아직 작가라고 할 수도 없는 초라한 글쟁이 겸 그림쟁이입니다. 영화를 비롯한 미디어의 플롯, 시나리오에 관심있는 일반인에 불과합니다. 이 글은 제 개인적이고 독자적인 의견이 담겨있으며, 원작자나 제작자를 폄하하거나 비방하고자 하는 의도는 없습니다. 모든 글은 오직 본인의 호기심과 학구열을 충족시키기 위해 작성되었습니다. 또한 여러가지 내용을 담기 위해 올린 캡처본을 비롯한 첨부파일은 저작권을 침해하고자 하는 의도는 없으며, 문제가 발생하는 즉시 수정하거나 삭제하는 등의 보정· 보완조치를 할 것을 약속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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